Episode 01
나만의 우주 말하기
김민정 × 김새솔 × 김은빈
“우리도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는데 그걸 몰라줘요”

청소년은 9세부터 24세까지를 지칭하는 단어지만, 다수의 인식 속에 청소년은 15~18세 정도에 멈춰있습니다. 2019년에 초연된 <영지>는 국립극단 청소년극에 처음 등장한 11살의 이야기였어요. “나는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의 다리를 가졌어. 내일은 또 다르고 모레는 또 달라!”를 외치는 영지가 탄생하기까지는 실제 11살의 목소리가 중요했습니다.

2018년 11살이었던 김민정과 김새솔은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영지>의 일부가 되어주었어요. 이제는 중학생이 된 민정이와 새솔이, 협력 교사였던 김은빈 선생님을 만나 그때의 기억을 나눠보았습니다.

김은빈, 김민정, 김새솔(왼쪽부터)
Q1
인터뷰를 부탁드리면서도 졸업 후에 여전히 아이들과 연락하실까 고민이 됐어요
김은빈
(김)새솔이는 5학년, (김)민정이는 5, 6학년 담임이었는데요. 2018년, 2019년 이때 아이들이 학교에 자주 놀러 오기도 하고, 지금 학교에 5년째 있다 보니 예전 학생들의 동생을 맡기도 해서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김새솔
선생님이 연락하셔서 <영지> 자문단 얘기를 하셨거든요. 민정이도 했던 게 생각나서 꼬셨어요.
김민정
새솔이랑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알았어요. 15년 인생의 절반을 같이 보냈죠.
김새솔
중학교 가서도 1학년, 2학년 같은 반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는 앞자리 뒷자리였고, 지금도 7번이랑 8번이에요.
10대 초반 소녀들을 다룬 <영지>(ⓒ국립극단)
Q2
11살 때 <영지> 자문단으로 활동했는데요. 당시의 일들이 기억나요?
김새솔
대본을 읽을 때가 있었어요. 학교에서 은빈 쌤이랑 창의동아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글도 쓰고 장치도 움직이고 연기도 하는. 동아리랑 비슷한 줄 알았는데, 친구나 선생님이 아닌 분들과 대본을 읽으니까 새로웠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하나의 연극이 만들어진다는 게 굉장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김민정
새솔이는 연극이 익숙했지만, 저는 이때 처음 연극을 알게 됐어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되게 신선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웃음) 저는 성우 쟤는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하던 때였거든요. 배우분들 연기 보면서 ‘저런 거 엄청 떨릴 텐데 어떻게 하나’ 싶고, 그러면서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지금보다 더 낯을 가릴 때라서 너무 쑥스러웠어요. 저는 얘처럼 용감하지 않아서, ‘잘못했다가 이상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김새솔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이라.
김민정
걱정을 사서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걱정을 하는 거지.
Q3
선생님은 아이들을 관찰하는 입장이셨을 텐데요. 학교 밖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은 어땠나요?
김은빈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교사의 권위가 있어야 학급 경영이 돼요. 하지만 학교 밖에서의 활동을 할 때는 ‘인솔자’로서의 역할을 더 하게 되죠.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학교에 대한 안 좋은 얘기도 스스럼없이 하더라고요. 사실 어떤 걸 싫어할 거라는 짐작은 하지만 아이들이 직접 발화하는 걸 듣는 건 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교사가 아닌, 아이들과 공동체를 구성해서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이 경험을 통해서 저도 같이 변했어요.
Q4
어떤 부분이 변하셨나요?
김은빈
아이들에게 여러 경험을 씨앗처럼 뿌려놓으면 그중에 발아되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이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방법도 채널도 다양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어른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구나. 어른들이 느끼는 자극과 아이들이 느끼는 자극이 진짜 다르고, 그래서 교사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도 다시 느끼게 됐어요.
효정과 영지, 그리고 소희(ⓒ국립극단)
Q5
연극에 나오는 영지, 소희, 효정 중에 두 사람은 누구랑 닮은 것 같아요?
김새솔
민정이는 소희처럼 모범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효정이처럼 천사 같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 둘을 조금씩 섞은 것 같아요.
김민정
얘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영지요. 아주 독특해요. 어떤 의미에서든.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고 해야 하나? 영지도 영지만의 세계가 있고 어른보다 어린이로 남고 싶어 하는 애로 보였거든요. 공연을 보면서 ‘저런 친구 한 명쯤 있으면 인생이 재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행동하는 건 저 친군데,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Q6
<영지>를 보면서 ‘내 얘기다!’라고 느꼈어요?
김새솔
친구가 학원 가기 전에 잠깐 놀이터에서 놀 때가 있거든요. 그때 그 친구가 소희처럼 이런 말을 해요. “내가 이걸 왜 가야 하는 거야!”
김민정
저는 가끔 머릿속에서 스토리를 짜본 적이 있어요. 책 속에 나올 것 같은 내용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죽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그런 거 되게 궁금하지 않니?
김새솔
인류 멸망 그런 거?
김민정
아니 그런 거 말고. 나는 죽을 때 어떤 느낌일까 그런 거. 얘는 아직도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있어요. 불로불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니까요.
“나는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의 다리를 가지고 있어.”(ⓒ국립극단)
Q7
선생님께서도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 청소년극이 있나요?
김은빈
2016년 <오렌지 북극곰>이요. 당시 3년 차 교사였는데, 통학에만 3시간 30분이 걸렸고 지도가 어려운 학생을 맡아서 학교를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특히 학급과 삶의 분리가 안 되던 때여서 텅 빈 지하철에서 혼자 우는 날도 많았어요. 그러다 <오렌지 북극곰>을 보게 됐어요. 제주도에서 똑 떼어져 나와 서울에 적응하지 못 하는 지영이가 부유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나와 같다고 느껴졌어요. 저도 본가가 부산이거든요. 친한 친구들과는 발령이 따로 나면서 만나기 힘들어졌고, 고민을 주변에 얘기하면 교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뭐가 힘드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울었고, 그게 또 엄청나게 위로가 됐어요.
Q8
선생님이 느끼시는 청소년극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김은빈
현실 도피와 같은 마음으로 공연을 많이 보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의 김은빈과 지금의 김은빈이 똑같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2014년의 김은빈이 나쁜 건 그때는 내가 맞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타성에 젖게 될 때가 있어요. 세상은 빨리 변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정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저는 그걸 그냥 따라가기만 해도 고인 물인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썩은 물이 되는 거고. 저는 그게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저는 공연을 통해 제 시야가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극 한 편 본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아요. 대신 각도가 조금씩 틀어지죠. 처음에는 잘 몰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약간의 각도들이 모여 엄청난 간극을 만들어내요. 제가 만난 세상은 사실 학교가 전부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존재하다가 학교로 들어오는 거잖아요. 연극을 통해 학교 밖에서 본인의 삶은 사는 아이들을 만나게 돼요. 애들을 마주할 때도 세상을 바라볼 때도 그렇고, ‘내가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정도로 성찰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Q9
삶에서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세요?
김은빈
친구랑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직업에 투자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연 보는 데 쓰는데, 그럼 이건 ‘직업 관객’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냐. 그 이야기를 갖고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10대 초반 청소년과 진행한 활동 현장(ⓒ국립극단)
Q10
<영지>는 10대 초반을 위한 연극이었어요. 당시를 경험한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새솔
요즘 애들이 <오징어 게임> 얘기를 엄청 해요. 뭔가 싶어서 저도 잠깐 봤는데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동심이 필요한 나이가 아닐까요? 정말 이런 걸 봐도 되나?
김민정
뭔가 어른들은 어린이라고 하면 자기가 어린이일 때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때보다 많이 변했고, 요즘 어린이들도 어른스러운 생각과 일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몰라줘요. 어린이랑 어른, 어른이랑 청소년 사이의 간격을 줄이려면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아야 할 것 같아요
Q11
지금 중2인데요.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어떤 점이 다른 것 같아요?
김새솔
저는 초등학생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봐요. 그때도 판타지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거든요. 관심 분야가 크게 벗어나질 않아서 지식이 조금 더 들어갔을 뿐이지 저라는 사람은 변화가 없어요.
김민정
초등학생 때는 그래도 좀 어린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교통카드를 찍으면 ‘청소년입니다’ 하니까 뭔가 좀 신기해요. 성적이나 친구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되고요. 친구들이랑 해질 때까지 놀고, 노래방도 가고, 지하철 타고 멀리 가보는 생각도 해요. 한편으로는 중학교 2학년인데 계속 놀고먹어도 되나 싶기도 해요. 진로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니까 다양한 걸 해보고 싶어요.
Q12
<영지>처럼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김새솔
시험이 좀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그걸 좀 거부하는? 과제를 할 때마다 대체 왜 과제가 내 시간을 잡아먹는지 모르겠거든요. 어른들이 “학생이 놀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는 얘기를 하면,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어차피 나중에 사회 나가면 열심히 일할 예정이라고. (웃음)
김민정
저는 ‘덕질’이요. 청소년이 덕질하면서 이렇게 행복해한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중학생들은 ‘덕질’을 하면서 만족해하고 돈도 허투루 쓰지 않거든요. 단순히 철없다고 보지 않고 우리들이 행복할 방법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김은빈
청소년극의 소재가 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특별한 부분이 있어요. 아마 극적인 요소가 필요하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세상을 보면 평범하지만 불꽃을 숨기고 있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아이들이 하는 말이 좀 더 궁금해요. 사실 학교에서도 그런 아이들을 많이 조명하지 못하거든요. 무난하니까요. 그런데 저도 그런 아이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 제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여기까지는 제 생각이고, 사실 어른들은 청소년이 말하고 싶은 것을 더 봐야 하는 것 같아요. 먼저 묻는 거죠. ‘너희 어떤 얘기하고 싶어?’ 거기서부터 시작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싶어요.
인터뷰이에 대하여

김민정과 김새솔은 초등학교 5학년 당시 <영지> 자문단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중학교 2학년이다. 이들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은빈은 여전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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